증수무원록언해
배경과 기원
임진왜란 이후 조선사회에는 실용적 측면을 강조하는 조류가 나타나는 한편 《무원록》을 대신하여 우리의 실정에 부합하는 지침서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1796년 간행된 것이 《증수무원록언해》이다. 《증수무원록언해》는 《무원록》을
국어사 연구서 요약 : 김무림의 ‘국어의 역사’ 2장 고대 국어
제 2 장 고대 국어
* 출전 : 김무림(2004), 『국어의 역사』, 한국문화사, 33-114쪽.
- 들어가기 전에
1. 고대 국어의 성립과 범위
1) 신라의 삼국통일은 우리 민족이 최초로 사회적 통일체를 이루게 하였고 민족어와 민족 문화
2.4 어간 말 자음군 표기
근대국어의 어간 말 자음군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ㆍㄱ이 선행하는 경우 : ㄳ
ㆍㄴ이 선행하는 경우 : ㄵ, ㄶ
ㆍㄹ이 선행하는 경우 : ㄺ, ㄻ, ㄼ, ㄾ, ㄿ, ㅀ
ㆍㅁ이 선행하는 경우 : ㅲ (체언 어간 말음으로만 쓰임)
ㆍㅂ이 선행하는 경우 : ㅄ
ㆍㅅ이 선행
있었는지 몰랐었다. 대학에 와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무척 우리말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우리 글자, 한글의 위대함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변해온 국어표기법의 과정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1. 재일 한국인작가 이양지
작가 이양지는 다나카 요시에[田中枝]라는 일본이름을 갖고 있다. 그는 일본의 야마나시현[山梨縣]에서 출생하였으며. 작품을 통하여 재일한국인, 특히 젊은이들의 뿌리에 대한 갈망과 고뇌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이양지의 작품이 대체로 뿌리 뽑힌 재일 한국인의 고
표기하려는 노력의 집대성이었다.②향찰은 실질적 의미 부분(어간)은 석독 표기로, 문법적 요소(접미사)는 음독 표기로 하는게 원칙이다.③향찰은 음절구조가 복잡하여 국어를 만족스럽게 표기하지 못했다.
(3) 훈민정음(訓民正音)①훈민정음은 세종 25년에 창제하고, 세종 28년에 반포된 독창성과 과학
표기 사이의 오류가 심한 낱말 조사
1-1 읽기 교과서의 낱말 중 받아 쓰기 오류가 많은 낱말을 찾아 교정지도방안과 유사오류 낱말을 조사하였다.
2) 발음카드 이용
ㅏ+ㅣ와 ㅓ+ㅣ는 혼돈을 자주 일으키는 낱말 가운데 하나인데 입 모양을 중심으로 자․모음의 기초 발음을 익히게 하고, 발음의
표기 :‘다리보리’ (인두)라는 우리말을 ‘多里甫里’라 표기한 것이라든가 ‘도라지’의 고형(固形) ‘도랒’을 ‘道羅次‘라 표기한 것은 음차에 의한 차자 표기다.
2) 훈차를 이용한 차자표기 : ‘밤재’, ‘한밭’이라는 우리 지명(地名)을 각각 ‘栗峴’. ‘大田’이라고 표기하고 이를 ‘밤재
재구조차도 어려운 상황에서, 고대국어의 음절구조를 규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여하튼 고대국어가 CV 개음절구조였다는 주장의 중요한 근거는 이들 문헌에 借字로 표기된 고유어의 어형을 재구해 볼 때, 이들이 모두 CV 개음절형으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借字表記를 통해 음
재로서의 콘크리트의 속성
· 콘크리트는 재료 미학적으로 형태를 자유스럽게 할 수 있으며 재료에서 나오는 느낌이나 표현이 담백하고 순수하며 결과물이 자연의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곤란하며 잘 못 다루어질 경우 획일적이고 무표정한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 양면